제 765 호 경험보다 '기록'이 중요한 시대…대외활동, 스펙 경쟁의 장
경험보다 '기록'이 중요한 시대…대외활동, 스펙 경쟁의 장
ᅠ공모전, 서포터즈, 기자단, 인턴십. 이제 대학생들은 대외활동에 너무나 익숙해졌다. 강의실 안에서 학점을 관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불안이 커지면서, 많은 학생들이 방학과 학기 중 시간을 쪼개 각종 대외활동에 뛰어들고 있다. 누군가는 직무를 미리 경험하기 위해, 누군가는 진로를 탐색하기 위해, 또 누군가는 자기소개서에 쓸 한 줄을 위해 활동을 시작한다.
그러나 대외활동을 바라보는 기준은 점차 달라지고 있다. 어떤 활동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지보다 몇 개의 활동을 했는지, 어느 기관의 이름을 이력서에 적을 수 있는지가 더 먼저 언급된다. 활동 과정과 고민은 짧게 지나가고, 수료증과 포트폴리오, SNS 게시물이 결과처럼 남는다. 대외활동이 대학생들에게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경험의 가치는어떻게 달라지고 있을까.
▲대학생 대외활동 대표 유형(사진:링커리어)
이력 한 줄로 남는 대외활동
대학내일 연구소는 2025년 '대학생 대외활동 참여실태 및 인식조사'를 통해 2024년 대외활동 참여율과 참여 횟수, 활동 선택 기준, 취업에 도움이 되는 활동 등을 다뤘다. 대외활동이 대학생 생활과 취업 준비 과정에서 별도로 분석될 만큼 주요한 영역으로 자리 잡은 셈이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대외활동에서 얻은 경험 자체보다, 대외활동의 성격이나 본인의 역할보다 활동 개수, 기관명, 수료 여부가 먼저 비교되는 경우가 많다. 한 학기 동안 서포터즈와 기자단을 병행하고, 방학에는 공모전과 인턴십을 준비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 여러 활동을 동시에 해내는 모습은 성실함과 열정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만큼 학생들이 감당해야 하는 부담도 커지고 있다.
대외활동은 모집 단계부터 치열한 경쟁이다. 지원서와 포트폴리오를 제출하고, 면접을 거쳐 선발되는 과정은 취업 경쟁의 축소판이다. 일부 학생들은 관심 분야와 맞는 활동을 고르기보다 합격 가능성이 높거나 이력서에 적기 좋아 보이는 활동을 우선적으로 선택한다. 활동을 통해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 고민하기 전에, 해당 활동이 향후 지원서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를 먼저 따져보게 되는 것이다.
늘어난 경쟁과 압박
이러한 흐름은 취업 시장의 불안과도 맞닿아 있다. 2025년 5월, 통계청이 발간한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부가조사'에 따르면, 졸업 후 첫 일자리에 취업하기까지 걸린 평균 기간은 11.3개월이었다. 대졸 이상 청년층의 첫 취업 평균 소요기간은 8.8개월로 전년보다 0.5개월 늘었으며, 청년층 비경제활동인구 중 취업시험 준비자 비율도 14.5%로 전년보다 0.6%p 상승했다. 취업 준비 기간이 길어지는 현실 속에서 학생들은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이런 압박은 개개인의 조급함만으로 생겨나지 않는다. 고용노동부와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2023년 하반기 기업 채용동향조사'에 따르면, 기업들은 신규채용 결정요소 1위로 '직무관련 일경험' 35.6%를 꼽았다. 또한 조사에 참여한 기업의 70.8%는 향후 경력직 채용이 더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입 채용에서도 직무 경험이 중요한 기준으로 떠오르면서, 대학생들은 재학 중에도 실무와 연결될 만한 활동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다.
여러 활동을 학업과 병행하는 과정에서 피로를 호소하는 학생들도 있다. 과제와 시험 준비에 더해 콘텐츠 제작, 회의 참석, 결과물 제출까지 이어지면 대외활동은 또 하나의 의무처럼 느껴진다. 활동에 참여하고 있어도 그 안에서 충분히 고민하고 성장할 여유를 갖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름 있는 활동을 마쳤다는 사실은 남지만, 그 시간이 자신의 진로와 어떤 관련을 맺는지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형식적인 참여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활동 기간 동안 주어진 과제를 제출하고 SNS 홍보물을 올리며 수료 조건을 채우는 데 집중하다 보면, 대외활동은 그저 하나의 과제이다. 물론 모든 대외활동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현장을 가까이에서 경험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협업하며, 전공 수업만으로는 얻기 어려운 배움을 얻는 경우도 많다. 고용노동부가 2025년도 청년 일경험 지원사업 시행지침을 게시하며 청년 일경험 기회를 정책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점도, 잘 설계된 활동이 진로 탐색과 직무 이해에 도움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대외활동의 양적 경쟁화는 학생 개인의 선택만으로 생겨난 현상이 아니다. 대학생들이 활동의 수와 결과물을 중시하게 된 배경에는 취업 시장의 변화와 사회적 평가 방식이 함께 놓여 있다. 그렇다면 왜 대학생들은 더 많은 활동을 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게 됐을까.
경력 같은 신입을 원하는 기업, 기록을 수집하는 대학생들
▲2025 제1차 KB굿잡 우수기업 취업박람회 전경(사진: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421/0008273555)
취업 경쟁의 이면에는 수많은 지원자를 가려내야 하는 기업들의 '직무 경험'을 최우선시하는 경향과 여전히 이력서 중심의 정량적 평가 경향이 자리 잡고 있다. 오늘날 신입 공채의 기준은 스펙과 경험, 태도로 요약되지만, 사실상 기업이 경력직을 선호하는 현상이 뚜렷해지면서 신입 지원자들은 직무 경험이 없어서 취업이 안 되는데, 취업을 못 하니 직무 경험을 쌓을 기회조차 없는 치명적인 모순에 빠진다. 심지어 대기업이나 유망 스타트업에는 이미 실무를 경험한 '중고 신입'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순수 신입 사원들이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좋은 일자리를 향한 진입 장벽이 갈수록 높아지는 셈이다.
이러한 취업 경쟁으로 인한 불안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된다. 타인의 화려한 활동 결산을 보며 느끼는 소외감은 '나만 뒤처질 수 없다'는 강박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대외활동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가'의 문제라는 것이다. 경험을 통한 내적 성장이 목적이 아니라, SNS에 전시하고 이력서에 기재하기 위한 '전시용 소모품'으로 활동을 소비하는 대학생들이 많아지면서 대외활동의 본질은 흐려지고 있다.
이에 정부와 기업은 스펙 중심의 채용 구조를 개선하고자 '탈스펙'과 '블라인드 채용'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대표적으로는 정부가 공공기관에 국가직무능력표준(NCS)을 도입해 스펙이 아닌 '일할 줄 아는 능력'을 평가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들조차 또 다른 형태의 '스펙'을 낳는 역설에 직면해 있다. 정량적 스펙을 걷어낸 자리에 '직무 역량 평가'라는 새로운 시험이 들어서자, 이를 대비하기 위한 사교육 시장이 다시 한번 들불처럼 번진 것이다. 실제로 많은 대학이 학원 강사를 동원해 NCS 특강이나 면접 대비반을 신설하며 사실상의 사교육 기관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또한 취업 인터넷 강의 사이트에는 NCS 전용 강좌가 쏟아져 나오고, 이제는 '스펙을 넘어서기 위한 또 다른 스펙'을 만들어야 하는 피로감이 대학가를 덮치고 있다. 결국, 채용 방식의 변화가 근본적인 경쟁의 강도를 낮추기보다는 평가의 종목만을 바꾼 채 대학생들을 새로운 사교육의 굴레로 밀어 넣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력서 한 줄 너머, 내면을 채우는 '진짜' 대외활동을 꿈꾸며
결국 대외활동이 스펙 경쟁의 장을 넘어 스스로를 이해하고 확장하는 본연의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개인과 사회 모두의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 대학생 개인은 화려한 이력을 나열하는 것보다, 각 활동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아 자신만의 이야기를 구축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무엇을 했는가"라는 양적 기록보다 "그 과정에서 나는 어떻게 변화했는가"라는 질적 성찰이 담길 때, 비로소 대외활동은 진정한 '경험'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사회와 기업의 역할 또한 막중하다. 서류상의 활동 개수나 이름값에 현혹되기보다, 지원자가 경험 속에서 어떤 인사이트를 얻었는지 다각도로 검증할 수 있는 정교한 평가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스펙 쌓기가 또 다른 사교육 열풍으로 번지지 않도록 채용의 패러다임을 '정량'에서 '역량'으로 완전히 전환해야 할 시점이다.
경험은 기록보다 힘이 세다. 대외활동의 실질적인 의미는 이력서의 한 줄이 아니라, 그 과정을 통과하며 단단해진 학생 본인의 내면에 있기 때문이다. 기록하기 위해 경험하는 주객전도의 시대에서 벗어나, 경험을 통해 나만의 삶을 기록해 나가는 건강한 대학 문화의 복원을 기대해 본다.
▲기록을 위한 경험이 아닌, 성장을 위한 경험의 중요성을 담은 이미지(사진:Chat GPT)
이은탁 기자, 김지연 수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