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젊은데 벌써 걱정돼요”… 중장년보다 심한 MZ세대의 노화 불안
“늙는 게 싫어.” 요즘 20대 초반 사이에서 자주 나오는 말이다. 노화에 대한 불안은 오랫동안 중장년층, 고령층의 문제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최근 조사 결과, 노화 불안을 가장 크게 느끼는 세대는 오히려 20·30대 청년층인 것으로 나타났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불안감이 커지고, 경쟁적 사회 구조와 경제적 부담이 더해지면서 청년층의 ‘노화 공포’는 새로운 사회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청년층에게 노화는 단순히 ‘나이 드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경제적 안정과 건강, 사회적 관계 유지에 대한 불확실성과 직결된다. 이러한 이유로 청년층은 노화를 삶의 기회와 자원의 손실로 인식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데 부담과 불안을 느끼는 경향을 보인다. 60대보다 높은 청년층의 노화 불안 ▲한양대학교 고령사회연구원 ‘한국인 노화 불안 척도’ 발표 자료 (사진: https://n.news.naver.com/article/277/0005653427?sid=102) 한양대학교 고령사회연구원이 지난 9월 17일 발표한 ‘한국인 노화 불안 척도’에 따르면, 전체 성인의 평균 노화 불안 수준은 5점 만점에 3.23점으로 ‘보통 이상’ 수준이었다. 특히 건강 상태 악화(3.80점), 경제력 상실(3.57점)에 대한 우려가 두드러졌다. 연령대별로는 20·30대 청년층이 평균 3.38점으로, 40·50대(3.19점), 60대 이상(3.12점)보다 높았다. 연구진은 “미래 불확실성, 노후 준비 부담, 노인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청년층의 ‘미래의 노화 자아’에 투영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특히 청년층은 사회적 소외(3.31점), 노인 낙인 인식(3.30점), 죽음과 상실 불안(3.37점)에서 다른 세대보다 높은 점수를 보였다. 이동성 저하, 관계 단절, 취미·여가활동 상실에 대한 두려움 역시 중·고령층보다 뚜렷했다. 연구원은 “청년층은 현재 삶의 핵심 영역이 노화로 제약될 것을 ‘존재 상실’로 받아들이는 성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경제적 여건과 생활환경에 따른 차이도 뚜렷했다. 여성(3.28점)이 남성(3.17점)보다 전반적 불안이 컸으며, 미혼·무자녀·독거 청년층이 상대적으로 높은 불안을 보였다. 소득이 낮을수록, 전·월세 거주자일수록, 그리고 국민연금·직역연금 등 공적연금 미가입자일수록 노화에 대한 불안이 컸다. 노화, 건강한 삶을 방해하는 이유라 생각 노화는 생애주기의 자연스러운 과정이지만, 청년층은 이를 손실과 위협의 과정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불안의 근원이 된다. 다시 말해, 노화가 전반적인 안녕(well-being)에 대한 위협 요인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한양대 연구원은 청년층의 노화 불안을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삶의 축소 가능성’으로 설명한다. 청년층은 노화로 인해 경제활동과 사회적 관계가 제한되거나, 치매나 만성질환 등의 건강 문제가 생길 가능성을 현실적 위협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기대수명은 83.5세이지만, 건강수명은 72~74세 수준이다. 즉, 평균적으로 10년 이상은 질병과 함께 살아야 하는 셈이다. 질병관리청 자료에 따르면, 30세 미만 2형 당뇨병 환자 발생률은 지난 13년간(2008년~2021년) 2.2배 증가했고, 유병률은 4배 가까이 늘었다. 20대 암 환자 역시 2014년부터 2018년까지 5년간 44.5% 증가했다. 의료 기술 발달로 수명은 연장되었지만, 건강을 온전히 유지하는 기간은 상대적으로 짧아졌기에 노후 부담은 더 커졌다고 볼 수 있다. ▲ 만성질환 유병률에 대한 질병관리청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 (사진: 질병관리청) 특히 건강 문제는 경제적 불안과도 맞물려 있다. 노후에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비교적 젊을 때부터 꾸준한 관리와 의료비 지출이 필요한데, 이는 경제적 안정이 전제되어 있을 때 가능하다. 그러나 현재 청년층은 불안정한 고용 구조와 낮은 임금, 높은 주거비로 인해 노후 대비를 시작할 여력조차 부족하다. 장기적인 경기 불황과 비정규직 확산 속에서 “늙어도 버틸 수 있을까”라는 막연한 불안이 현실적인 고민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건강과 경제의 이중 부담은 청년들에게 조기 노화, 활동 제약, 그리고 사회적 배제에 대한 복합적인 두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젊음이 곧 자산’이라는 인식 오늘날 사회는 ‘젊음’을 단순한 시기가 아니라 하나의 자산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미디어와 SNS에서는 “젊을 때 즐겨야 한다”, “예쁠 때 기록하라”는 메시지가 끊임없이 반복된다. 동시에 몇몇 드라마와 광고는 노년의 삶을 여전히 도움이 필요한 존재로 묘사한다. 물론 최근에는 노인을 주인공으로 한 긍정적인 서사도 등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주류 담론 속 노년은 무기력하거나 의존적인 모습으로 묘사되며 ‘활력을 잃은 시기’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젊음을 하나의 ‘무기’로 여기고, 그것이 사라지는 순간을 두려워하는 분위기가 청년층 사이에 형성됐다. ▲유튜브에 ‘노화’를 검색했을 때 나오는 콘텐츠 (사진: 유튜브 캡처) 최○빈 씨(경영학과, 3) “요즘은 젊을 때 놀아야 한다, 예쁠 때 찍어둬야 한다는 말이 너무 많다”며, “젊음이 일종의 자산처럼 느껴지고, 그게 사라지는 게 무섭게 느껴질 때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부모 세대보다 취업이 어렵고 집값도 높으니까 지금도 버거운데, 미리 준비해 둔 게 없으면 나이 들어서 더 힘들까 봐 막연히 불안하다”고 전했다. 이처럼 청년층은 젊음이 곧 사회적 경쟁력으로 작용하는 구조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젊다’는 것은 곧 일할 능력, 사회적 관계망, 외모 경쟁력 등을 의미하며, 그로 인해 젊음은 하나의 ‘경제적 자본’처럼 여겨진다. 따라서 노화는 단순한 생물학적 변화가 아니라, 사회적 불이익의 시작점으로 인식된다. 실제로 안티에이징이나 슬로에이징(slow-aging) 산업이 20대 초반부터 빠르게 확산된 것도 이러한 사회적 압박의 반영이다. 젊음을 유지하기 위한 소비가 자기관리의 형태로 포장되지만, 그 이면에는 ‘늙지 않기 위한 불안’이 자리하고 있다. 노인에 대한 부정적 시선으로 연결 이러한 개인의 심리적 불안은 단지 자기 인식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연령주의(ageism), 즉 노인 집단에 대한 편견과 부정적 태도로 연결될 수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 ‘한국 청년 및 장년 세대의 노인과 관련한 연령주의의 심리적 기제: 연령사회정체성과 노화불안을 중심으로(2022)’에 따르면, 개인의 노화불안이 노인 집단에 대한 편견과 차별적 태도로 발현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보고서는 “노화불안이 심리적 위협으로 작용할 경우, 노인을 사회적으로 배제하거나 부정하려는 행동이 나타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결국, 청년층의 노화불안은 세대 간의 심리적 거리감을 확대시킬 가능성이 높다. ‘노인 = 약자’라는 고정관념은 세대 간 단절을 심화시키고, 노년층의 사회적 존재 가치를 축소시킨다. 청년들이 노년의 삶을 ‘경험의 축적’이 아닌 ‘활력의 상실’로만 인식하게 될 때, 사회는 점점 더 나이 드는 것을 부끄럽게 만드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러한 왜곡된 인식이 지속된다면, 개인은 노화를 더욱 두려워하게 되고, 사회는 세대 간 연대보다는 회피를 선택하게 된다. 정책적 지원과 사회적 인식 개선 필요 청년층의 노화 불안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개인적 준비와 제도적 지원이 동시에 필요하다. 먼저, 노인 세대가 늙어서도 사회에서 활발하게 일하고 경제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일자리 지원과 안정적인 연금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청년층은 노후를 단순히 ‘경제적 부담’으로만 인식하지 않고, 사회적·경제적 참여가 가능한 삶으로 바라볼 수 있다. 또한 청년층의 미래 불안을 줄이기 위해서는 현재의 취업 문제와 소득 안정성이 중요하다. 안정적인 고용 구조와 합리적 임금 체계, 주거와 생활비 부담 완화 등 현실적인 기반이 마련될 때, 청년층은 노후 준비를 시작하는 데 부담을 덜 느낄 수 있다. 건강 측면에서도 국가 차원의 장기적인 건강검진과 예방 프로그램 지원이 필요하다. 조기 건강 관리와 질병 예방 체계가 강화되면, 청년층은 ‘질병과 함께 살아야 하는 노후’에 대한 불안을 줄일 수 있다. 미디어의 역할 또한 중요하다. 미디어가 젊음을 과도하게 이상화하고 노화를 부정적으로 묘사할수록 개인의 불안은 커진다. 따라서 노화를 자연스러운 생애 과정으로 보여주는 콘텐츠 확산과, 다양한 세대의 삶을 균형 있게 다루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 결국 청년층의 노화 불안은 단순한 심리적 문제가 아니라, 불확실한 미래 구조와 사회적 압박 속에서 발생한 복합적 현상이다. 안정적인 고용과 기본적 경제 안전망, 그리고 긍정적 사회 인식이 뒷받침될 때, 청년들은 노화를 두려움이 아닌 삶의 또 다른 단계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이윤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