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47 호 대형 산불 최전선의 소방관들…처우는 여전히 사각지대
전국적으로 일어난 대규모 산불 사태로 인해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지난 3월 14일부터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이번 산불로 사망 31명, 부상 45명의 큰 인명피해와 여의도 면적 166배를 소실하는 등의 막대한 재산 피해를 입었다. 특히 산불로 인한 피해가 심각한 영남권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어 국가 소방동원령 3호와 갑호비상이 발령되는 유례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소방당국은 진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건조한 날씨와 강한 바람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 3월 22일에 포착된 위성 사진 (사진: NASA)
열악한 상황의 소방관들, 현장의 문제점은?
진화 현장에서 소방관들이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단순히 환경 때문만이 아니다. 열악한 장비와 지원은 현장에서 일하는 소방관들에게 큰 위험으로 다가오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밤낮으로 근무하는 이들에게는 완벽한 장비와 확실한 지원이 필요하지만, 부족한 인력과 예산 등으로 인해 노후화된 장비를 아직 사용하고 있다.
‘소방장비 관리업무 처리기준’에 따르면 소방기관의 장은 연 1회 이상 소방장비 관리 상태 등을 전문적으로 점검하여야 한다. 그러나 인력과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몇몇 소방서에서는 정기적인 점검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 결과 성능이 저하되거나 노후화된 장비가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소방관들이 생명의 위협을 받기도 하고, 나아가 국민의 안전까지 위태로워진다. 소방차와 소방헬기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번 대규모 산불 사태에도 진화를 위해 출동한 소방헬기가 추락하여 조종사가 순직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조사 결과 이 기종은 44년 된 노후기종으로 밝혀졌다.
이처럼 열악한 소방 환경은 소방관들의 안전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요구조자를 포함한 국민에게까지 피해를 줄 수 있다. 그러나 인력과 예산의 부족으로 큰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열악한 소방현장의 상황은 언제쯤 나아질까?
소방관 상황, 언제쯤 나아지나
소방관은 상시적으로 생명의위협이 되는 상황에 직면하며, 극도의 업무 강도에 노출되는 고위험 직군에 속하는 만큼 보수나 지원이 충분한지에 대한 논란이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2024년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소방관의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유병률은 일반인의 10배 이상에 달한다. 작년에 개봉한 영화 ‘소방관’에서는 이러한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에서는 방화 장갑이 없어 사비로 산악용 장갑을 구매하고, 방화복이 아닌 방수복을 입고 화재를 진압하는 장면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실제로 이런 열악한 상황이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다. 현재 소방관들의 처우는 과거보다 나아졌지만, 여전히 개선이 시급한 부분이 많다.
영화 ‘소방관’에서 다룬 2001년 홍제동 방화 사건 이후, 화재 진화 수당이 4만원에서 8만원으로 인상됐으나 이 액수는 23년간 동결인 상태다. 최근 들어 근무 중 부상을 당했을 때 지급되는 간병비가 5만원에서 15만원으로 인상되기는 했지만, 공상처리를 받아야 하는 것이 문제다. 화재로 인한 피부 화상 치료나 허리디스크 등은 공상(공무(公務)로인하여입은상처) 추정법상 포함되지 않아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0년, 전국 소방공무원이 지방직에서 국가직으로 전환되었으나 현장 소방관들은 체감할 만한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소방 관련 예산권과 인사권이 여전히 지자체장에게 있어, 재정 자립도에 따라 장비의 품질이나 수당 등 처우에서 큰 격차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부실한 안전 장비나 급식 문제 등이 지속되어 제복을 벗는 소방관은 갈수록 늘고 있다. 젊은 소방관들의 이탈이 계속된다면 국민 안전 공백도 불가피해지는 만큼 종합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 소방관 구조구급활동비 현황 (사진: 이윤진 기자)
소방관 처우 개선 어떻게?
예전처럼 전문 소방 장비가 아예 없는 상황은 아니지만 지역 편차가 큰 것이 가장 문제이다. 재정이 충분한 지역에서는 양질의 장비가 제공되는 반면, 지방에서는 개선 속도가 더디다. 소방관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불균형을 해소하고 장비의 현대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훈련 환경 개선도 중요한 과제다. 최근에는 대부분의 화재가 자동화된 소방 설비로 초기 진화되어, 대형 화재를 경험할 기회가 많지 않다. 그러나 이번 대형 산불 화재와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젊은 소방관들은 경험이 없어 부상당할 가능성이 높다.이러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훈련 환경을 조성하고 지원할 필요가 있다.
또, 공상 신청에 있어서도 개선이 필요하다. 현재 소방관이 공상이나 순직 승인을 받으려면 부상이나 질병의 직무 연관성을 입증해야 하지만, 이를 증명하기가 쉽지 않다. 직업적 이유로 발생하는 혈액암이나 폐암 같은 경우 돌발성으로 나타나는 질환이 아니기에 입증하기가 어렵다. 소방 조직 자체에서 질병 데이터를 축적해 직무상 연관성을 인정해주거나, 다른 업종 종사자와 비교해 특정 질병 유발률이 높다면 공상으로 승인해주도록 해야 할 것이다.
소방관들은 극한의 현장을 수없이 마주하며 정신적 충격을 겪지만, 이에 대한 치료 지원은 충분하지 않다. 미국의 경우, 소방관뿐만 아니라 그 가족까지 심리 상담이나 치료 비용 지원 같은 관리가 이뤄지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상담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지만 익명이 보장되지 않아 낙인에 대한 두려움으로 많은 소방관들이 이용을 꺼리고 있다. 2026년에는 소방심신수련원이 신축될 예정이지만, 실질적 효과를 거두려면 이용 문턱을 낮추고 질적인 측면을 향상시킬 필요가 있다. 또한, 심리적 고충을 호소하는 소방관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조직 문화 개선도 병행되어야 한다.
영남 지역을 중심으로 번진 최악의 산불과 맞서 싸운 소방대원들을 위한 시민들의 응원과 지원이 잇따르고 있다. SNS에서는 소방관 지원 물품을 구매한 시민들의 영수증이 올라오고 있고, 구호 단체에 접수되는 ‘소방관 지지 서명’ 숫자와 후원 성금도 급증하고 있다. 소방관의 안전은 곧 시민 안전과 직결된다. 국민의 관심이 높아지는 지금이야말로 실질적인 처우 개선을 이룰 수 있는 적기다. 더 늦기 전에 제도적 개선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윤진 기자, 박찬웅 수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