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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제 741 호 웃음을 위한 과장인가? 건강한 풍자인가?

  • 작성일 2024-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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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883
이윤진

웃음을 위한 과장인가? 건강한 풍자인가? 



  최근 ‘SNL 코리아’에서의 패러디 장면이 논란에 휩싸였다. 그룹 뉴진스의 멤버 하니가 국정감사에 출석한 모습,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외모, 인기 드라마 ‘정년이’를 ‘젖년이’로 패러디한 부분이 화두에 올랐다. 인종차별, 외모 비하, 선정적 패러디 등이 문제가 된 것이다. SNL의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패러디는 인물을 과장하거나 풍자를 전하는 도구이므로 풍자와 조롱의 경계가 매우 모호하다.

SNL의 시작 

  SNL의 원조는 미국 방송국 NBC에서 약 50년간 방영하고 있는 ‘Saturday Night Live’이다. 우리나라에서 하는 ‘SNL 코리아’는 말 그대로 ‘코리아’ 버전이다. ’SNL코리아‘는 2011년에 미국 SNL의 포맷 라이선스를 받아 제작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시즌제로 이어진 프로그램이다. 미국 SNL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여러 국가에 판권을 수출해 약 11개 국가에서 현지화되어 론칭되고 있다.

  프로그램의 기본적인 콘셉트는 ’당신이 알고 있던 스타를 잊어라!‘라는 슬로건으로 호스트들이 자신의 모습을 망가뜨리는 모습으로 재미를 주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냥 재미가 아니라 ’콩트와 정치 풍자를 통한 재미‘라는 부분이다. SNL이 여러 국가에서 인기를 끄는 가장 큰 이유는 정치 및 사회적 이슈를 성역 없이 적극적으로 다루기 때문이다. 이는 이 프로그램의 독자적인 콘셉트라고 할 수 있다. 국정감사나 런닝 동호회 모습을 패러디하는 등, 사회 이슈를 적나라하게 풍자하는 프로그램은 현재는 SNL밖에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 ‘SNL코리아’ 포스터 (사진:https://www.coupangplay.com/content/fb2bb8b0-a544-4be1-8489-83cb38adad05)

  ‘흉내 내기’는 항상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다. 잘 따라 해도 문제이고, 못 따라 해도 문제이고, 잘못 표현해도 문제이다. 그러므로 패러디를 중심으로 하는 코미디 프로그램은 항상 애매모호한 경계선에 서 있을 수밖에 없다.

  ‘SNL코리아’는 매 회차가 업로드될 때마다 화제가 되고 빼놓을 수 없는 이야깃거리가 등장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패러디가 항상 조롱이 뒤섞여 있고 성적인 내용을 주된 패러디로 삼아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많은 매체들은 SNL을 ‘웃음거리에만 집중한 길 잃은 풍자 코미디’라고 평가한다. 2030 여성을 기싸움을 일삼는 어리숙한 모습으로 표현하고 MZ들을 비도덕적인 청년으로 프레임화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에 비해 정치와 사회에 대한 직접적인 풍자는 배제되었다고 평가한다.

풍자와 조롱 사이 줄타기 

  최근 미국에서는 대선을 앞두고 ’Saturday Night Live’에 민주당 후보인 해리스 전 부통령이 카메오로 출연했다. 해리스 전 부통령은 자신의 파안대소를 흉내 내는 출연진에게 “내가 진짜 그렇게 웃느냐”라며 관객들의 호응을 끌어냈다. 이를 본 트럼프 측은 형평성에 대해 반발하였고 이를 잠재우기 위해 NBC는 트럼프의 영상 메시지 광고를 내보내기도 했다.

▲ 미국 대선 후보 카밀라 해리스가 미국 SNL에 출연한 모습
(사진: https://n.news.naver.com/article/023/0003867942?sid=104)

  ‘SNL 코리아’가 미국 SNL과 항상 비교되는 부분은 정치적 풍자와 약자에 대한 풍자이다. ‘SNL 코리아’에는 정치인들이 홍보를 위해 잠시 출연하는 코너가 있다. 크루들은 그들에게 답하기 힘든 질문들을 하며 웃음을 주려 하고, 정치인들은 곤란해하며 불편한 입장을 보이기도 한다. 여기서 마지못해 대답하는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면 시청자들도 민망해지는 경우가 있다. 미국에서 대통령은 가장 흔한 풍자 대상이다. 대통령의 발언, 의혹을 거침없이 패러디해 방송한다. 과거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는 코로나19에 확진된 트럼프 대통령을 소재로 회복까지 오래 걸렸으면 좋겠다는 직접적인 발언을 해 여파가 컸던 경우도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치인들을 함부로 해선 안된다는 인식이 깔려 있어 정치풍자에 있어서 매우 보수적인 편이다. 그런 까닭에 ‘SNL코리아’에서 속시원한 정치풍자를 보기는 어렵다. 


  ‘SNL코리아’ 시즌 1부터는 대선을 앞두고 후보들이 출연해 인터뷰를 하는 등 패러디를 통해 나름의 노력을 보이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풍자에 있어서 보수적이라는 한국의 특이성이 대중의 반응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의도했던 유머가 의도와는 다르게 전달되는 경우 받는 타격이 크다. 정확하게 문제를 꼬집었다고 하더라도 권력이나 민감한 사회 문제를 비판하는 경우에는 그 유머를 모욕적이거나 도발적인 것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는 ‘SNL 코리아’가 웃음을 위한 패러디만을 보여줄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슈의 본질을 말하지 못하고 외모나 말투를 따라하는 등의 ‘겉핥기’식 풍자가 대부분이다.

  풍자와 조롱의 차이는 아주 미세하다. 어떤 인물이나 이슈를 비판하는 것을 그 본질을 대상으로 하면 건강한 풍자이지만 외모와 표정을 흉내 내는 건 조롱에 가깝다. ‘SNL 코리아’도 대상 설정이 중요해 보인다. 최근 문제가 된 ‘젖년이’ 발언도 성적인 전환이 아니라 드라마가 원작 웹툰의 성소수자와 페미니즘 캐릭터를 지운 것을 비판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패러디를 한다면 대상을 격하하는 게 아니라 특징을 차별화해야 하며, 풍자를 한다면 대상의 본질을 정확히 꼬집어야 한다.

건강하게 비판하고 풍자할 수 있는 토양 필요

  ‘SNL 코리아’가 끊임없이 논란에 휩싸이는 이유 중 하나는 시청자가 유머를 받아들이는 방식에도 있다. 아무리 의도가 긍정적이고 풍자적인 요소가 포함되었다 하더라도 시청자들이 이를 비판적 시선으로만 받아들인다면, 그 의도가 곡해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물론 비판적 시선은 매체를 바라보는 데에 있어서 언제나 중요하다. 그러나 풍자가 사회의 건강한 비판 기능을 수행하고 다양한 시각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대중 또한 코미디의 본질을 이해하고 조금은 여유로운 자세로 이를 즐길 수 있는 문화적 성숙도 필요하다. 여기에 더해, 풍자가 겨냥하는 권력층의 반발 역시 풍자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원인이 된다. 권력층이 풍자의 메시지를 부정적으로 간주하고 이를 억압할 때 풍자의 자유는 제한되고 창작자들은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너무 민감한 반응보다는 때로는 의도와 메시지에 집중하는 유연함이 ‘SNL 코리아’와 같은 프로그램이 더 나은 풍자 코미디로 즐거움을 주고 건강하게 사회를 감시하고 비판 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 수 있다.

  ‘SNL 코리아’는 유튜브를 제외하고는 개그 프로그램이 많이 없어진 이 시점에서 웃음을 주는 독보적 매체이다. ‘독보적’이라는 타이틀을 과도한 흉내 내기로 변질시키지 않고 풍자와 패러디의 본질을 잘 이해함으로써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면 더 많은 대중에게 공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윤진 기자